최저 임금과 생활 임금의 차이
“최저임금이 오르면 다 해결된다?” 생활임금의 필요성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이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하다. 뉴스에서 매년 여름이면 등장하는 최저임금위원회 파행, 사용자단체와 노동계의 치열한 줄다리기, 정부 발표에 쏠리는 언론의 관심. 그러나 이 뜨거운 논쟁이 다루는 주제는 늘 숫자다. “내년에 시급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가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잘 묻히곤 한다. “그 돈으로 과연 살 수 있는가?”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에게 법적으로 보장하는 최소한의 임금이다. 그러나 ‘최소한’이라는 말은 곧 ‘생존선’을 의미할 뿐이다. 기계적으로 계산된 수치가 아니라, 실제로 그 임금이 한 달 살림을 꾸리고 방세를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내가 알바를 하던 시절, 시급이 8,350원에서 8,590원으로 오를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편의점 도시락이 500원, 지하철 기본요금이 150원 오르자 “결국 그대로 아니야?”라는 허탈함이 찾아왔다. 친구들도 “최저임금 올라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이 글에서는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이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 왜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지, 한국에서 생활임금 논의가 왜 중요한지, 구체적인 사례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4개의 흐름으로 나눠서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숫자가 아닌 ‘삶’을 중심에 두고 임금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최저임금의 법적 정의와 한계: 생존선으로서의 의미
먼저 최저임금이란 무엇인가? 법적으로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법정 최저수준의 임금을 의미한다. 한국의 최저임금법 제1조는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즉 국가가 개입해 임금의 바닥을 설정함으로써 극심한 저임금을 막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제도다.
문제는 이 ‘최저’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다. 한국의 최저임금 결정은 주로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기업지불능력, 고용수준 등을 고려한다. 즉 사회·경제 지표의 평균적 움직임을 반영해 정한다. 하지만 ‘평균’은 위험하다. 한국 사회는 이미 심각한 양극화 상태이고, 저소득층이 소비하는 항목의 물가상승률은 평균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
내가 알던 한 편의점 알바생은 시급이 오를 때마다 사장님이 “그래서 근무시간 줄여야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월급은 비슷하거나 줄어들었다. 최저임금이 ‘보장선’이 되지 못하는 사례였다. 또 다른 친구는 시급이 올랐는데도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 법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국의 최저임금은 ‘생존을 보장하는 최저선’이라는 의미에서 법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생활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이 한계가 바로 ‘생활임금’ 논의의 출발점이다.
생활임금의 개념과 필요성: ‘사는 게 가능한 임금’
그렇다면 ‘생활임금’이란 무엇인가?
생활임금은 단순히 굶어 죽지 않게 최소한을 보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한다. 주거비, 교통비, 식비, 교육비, 의료비, 문화비 등 한 사람이 실제로 사회 안에서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 정하는 임금이다.
생활임금제는 이미 한국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공무직·기간제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매년 생활임금을 고시한다. 2023년 서울시 생활임금은 시급 11,157원으로, 같은 해 법정 최저임금(9,620원)보다 약 16% 높았다. 왜 높을까?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 서울 거주자가 1인 가구로 살 때 필요한 주거비, 교통비, 식비 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서울시 생활임금 대상자로 일할 때 “최저임금보다 확실히 숨통이 트였다”고 했다. 월급이 30~40만 원 정도 더 나오니 방세 내고 나서도 식비가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반면 최저임금만 받던 다른 알바는 월세를 내면 매달 적자였다.
생활임금은 단순히 돈을 더 주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약자에게 “너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상징이다. 국가가 “이 정도는 줘야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다”고 책임지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철학이 없이 단순히 숫자만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생활임금 논의와 현실적 도전
한국에서 생활임금 논의는 201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됐다. 비정규직, 알바생, 청년층이 “최저임금만으로는 못 산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국가 단위에서 생활임금을 법제화한 적은 없다.
왜 어려울까? 첫째, 기업 부담 논리가 크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최저임금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생활임금까지 강제하면 문 닫을 수밖에 없다”고 반발한다. 실제로 편의점 사장님이 “알바 시급이 오르면 알바를 줄이고 내가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둘째, 지역별·업종별 차이를 반영하는 문제가 있다. 수도권은 주거비가 비싸서 생활임금이 높아야 하지만, 지방 소도시는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낮다. 동일한 생활임금을 전국에 적용하면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합의가 어렵다. 생활임금은 단순히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사회복지, 주거정책, 교통정책까지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책은 이런 통합 설계보다는 부처별로 분절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생활임금 논의는 여전히 ‘지자체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서울시나 일부 광역자치단체의 경험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생활임금이 적용된 공공부문 노동자의 만족도와 생활여건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이것이 한국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최저임금에서 생활임금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일
한국이 진정으로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려면 최저임금 논의를 생활임금 논의로 확장해야 한다.
첫째, 법정 최저임금 산정 과정에서 생활비 지표를 구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주거비, 교통비, 식비 같은 필수 비용을 조사하고 반영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은 ‘생존선’에도 미치지 못한다.
둘째,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생활임금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서울시 등에서 입증된 효과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생활임금 수준을 현실화하도록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지역별 물가와 생활비를 반영해 차등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용자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가 생활임금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고용보험, 사회보험 지원, 세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생활임금이 자영업자를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을 공평하게 나누는 정책이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넷째, 생활임금 개념을 넓게 보아야 한다. 단순히 시급이 아니라 주거정책, 교통정책, 복지정책을 포괄하는 종합적 관점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비용을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분담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법적 안전망이자 사회의 양심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기 어렵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얼마 줄까”에서 “어떻게 살게 할까”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생활임금은 그런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