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와 최저임금 문제
최저임금 논쟁의 중심에 선 외국인 노동자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다. 농촌,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까지, 인력난을 겪는 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필수적인 인력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과 근로 조건, 특히 최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일부 고용주들은 “외국인 노동자는 숙소 제공, 식사 지원 등 부가 혜택을 받으니 최저임금 예외를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권 단체와 노동계는 “최저임금은 국적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맞선다. 실제로 한국 헌법과 근로기준법은 모든 근로자에게 국적 차별 없이 동일한 최저임금 적용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축산업, 어업, 일부 제조업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미지급,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문제가 여전히 발생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언어 장벽과 체류 신분 문제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최저임금 문제의 현실, 배경, 그리고 해결 방안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구조와 임금 현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는 크게 합법 체류 노동자와 미등록(불법 체류) 노동자로 나뉜다.
합법 체류 노동자는 고용허가제(E-9 비자), 방문취업(H-2 비자) 등을 통해 주로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반면 미등록 노동자는 단기 체류 기간을 넘겨 불법 체류 상태로 건설현장, 식당, 가사노동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양쪽 모두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점이다. 합법 체류자라고 해도 고용주가 ‘숙식 제공’ 비용을 임금에서 공제하거나, 근로계약서에 낮은 금액을 기재하고 실제로는 더 적게 지급하는 사례가 있다. 농촌에서는 수확 철에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하면서도 시급이 최저임금의 70~80%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보고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찬드라 다스 하리 나라얀은 안전모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벌목 작업에 투입됐다가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으나 고용주는 산업재해 보상 서류에 그가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고만 신고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며 월급 230여만원 중 200만원 정도를 네팔 고향으로 보내고 있는 삼머 츠헤트리는 고용 계약 당시 약속받았던 ‘숙소’가 사실은 검은 비닐 차광막으로 덮인 낡은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는 낡은 컨테이너라는 사실을 일하러 와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직물 공장에서 3년간 주6일, 12시간 교대근무를 한 방글라데시 출신 아시스 쿠마르 다스는 고용주가 “월급을 제때 또는 전액을 지불한 적이 없었다”며 임금 체납이 일상적이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에도 노출되어 있다면서 “그들은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한다. 붐비는 버스에서 그들은 내 옆 빈자리에 앉기보다는 서서 가는 편을 택했다”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NYT는 “한국에서는 인구 위기와 ‘더럽고 위험한 저임금’ 일자리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노동자 보호·지원 조치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조사관과 통역인을 더 늘리고 불법을 저지른 고용주 처벌을 강화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2024년 한해 무려 16만5000건의 임시 취업 비자 발급을 계획하고도 이주자 지원센터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정책 축소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미등록 노동자는 법적 보호를 받기 더 어렵다. 고용주가 체류 신분을 빌미로 “문제 제기하면 신고하겠다”고 압박해, 임금 체불이나 최저임금 미지급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일부 사업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며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환경이 형성된다.
또한 숙소 제공을 이유로 임금을 깎지만, 실제 환경은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공동 기숙사 등 열악한 경우가 많다. 이는 법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부분이며,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최저임금 논쟁의 배경과 사회적 파장
외국인 노동자와 최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임금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의 노동 가치와 인권 의식을 반영한다. 고용주 측의 주장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일부 영세 농가나 제조업체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 생산을 유지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이 매년 인상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져 사업 지속이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임금 체계가 고착되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구조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늦추고, 국내 청년층의 해당 업종 진입을 더욱 막는다.
사회적 파장도 크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무역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최저임금 적용을 권고하고 있으며, 일부 선진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가 노동시장 하위에 고착되면, 내국인 저임금 노동자와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외국인 때문에 내 일자리가 줄었다”는 인식이 퍼지면, 사회적 배타성과 혐오가 확산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개선 방안과 지속가능한 노동환경 조성
외국인 노동자와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최저임금 법 집행 강화다. 단속 인력을 늘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쉽게 신고할 수 있는 다국어 온라인·전화 신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체불 임금 신고 시 체류 자격이 일시적으로 보장되는 제도도 필요하다.
둘째, 숙식비 공제 기준 명확화다. 현재 숙소·식사 제공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관행이 있는데, 이를 법적으로 상한선과 품질 기준을 정해 남용을 막아야 한다.
셋째, 산업 구조 개선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 저임금 노동력으로만 활용하지 말고, 기술 교육과 경력 개발 기회를 제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용주도 장기적 인력 확보가 가능해진다.
넷째, 사회 통합 프로그램 확대다. 언어 교육, 노동법 교육, 지역사회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갈등 완화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기준 준수다. ILO 권고에 맞춰 국적·인종과 무관하게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 신뢰도를 높이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와 최저임금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노동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차별 없는 노동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산업 발전과 사회 통합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