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30대가 되어도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요즘은 계약직이란 말로 바꿔 부르기도 하지만 용어만 다를뿐 결국엔 똑같다.
20대에는 “취업 준비 단계”라고 이해해도, 30대에는 “이제 자리 잡아야 할 나이”라는 사회적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많은 30대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도 그 사실을 숨긴다. ‘불안정’, ‘낮은 임금’, ‘복지 사각지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내가 30대 초반에 겪었던 계약직 생활은 한 달 급여가 180만 원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이 8,350원이던 해였다.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해 받는 법정 월급이랑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주 15시간 이하로 쪼개서 4대보험을 피하는 단기 계약, 시급을 맞춰 주되 주휴수당은 주지 않는 편법도 흔했다. 비정규직의 현실은 법정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기준”이 아니라 “현실의 표준”이 되는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글에서는 30대 비정규직의 실질임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최저임금 상승이 이들에게 어떻게 체감되는지, 일과 생활비 부담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남겨진 과제와 사회적 의미를 세 개의 큰 흐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과 생존의 문제다.
현실의 임금구조: 법정 최저임금이 곧 ‘표준임금’인 삶
30대 비정규직의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실제임금”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매년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지만, 사업장은 “그거 맞춰 주면 됐다”는 태도를 보인다. 얼마전 내가 일했던 베이커리카페에서도 월급이 230만 원대였다. 나쁘지 않는 금액으로 보이긴 하지만 하루 9시간(30분 식사) 즉 8시간 30분에 아침 저녁 교대,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최저임금 + 주휴수당을 기준으로 월급을 계산하면 비슷한 수준이 나왔다.
이렇게 많이 일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부 사업장은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주 14시간 이하로 근로시간을 쪼개거나, 아예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 아이가 하는 말이 알바를 주 3일만 출근하는데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 그대로 받고, 주휴수당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야근수당? 그런 건 말도 꺼내기 힘들었다. 바로 그만 두긴 했지만 속상하고 힘든건 나아지지 않는다. 또 4대보험 가입을 피하기 위해 단기계약을 반복하는 곳도 있었다.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단순노무직뿐만 아니라, 콜센터, 공공기관 위탁사업, 민간기업의 계약직 사무직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20~30% 적고, 상여금과 수당이 없다. 그리고 매년 “재계약 여부”를 두고 눈치를 봐야 했다. 결국 비정규직 30대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월급도 조금은 오르겠네” 수준이었지, 생활을 개선할 획기적 계기는 아니었다.
생활비 부담: 30대가 되어도 ‘빠듯함’이 일상인 이유
30대 비정규직이 가장 괴로운 점은 “나이 먹었으니 이젠 자리 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실제 생활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한번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면 정규직이 된다는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도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면 정규직보다는 비 정규직이 될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적은 노동시간과 월급이 문제다.
월급도 적은 상황에서 주거비는 여전히 큰 부담이었다. 내집마련을 했으면 모를까 전세나 월세로만 월급의 20% 이상이 나갔다. 교통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차량 운행은 꿈도 못꾸고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고 해도 월 교통비는 6만 8천원, 식비도 문제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가장 싼 점심이 8,000원이다. 조금 좋은걸 선택하면 만원이 든다. 통신비, 공과금까지 내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친구 중에는 결혼하고 애가 있는데도 비정규직이라 맞벌이를 해도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게다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대출받기도 쉽지 않았다. 은행에서 신용등급이 낮게 책정되거나, 소득 증빙이 안 된다고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학자금 대출 상환도 큰 부담이었다. “30대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저축도 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지 않냐”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실제로는 ‘다음 달 생활비 어떻게 내지’가 현실이었다.
남겨진 과제와 사회적 의미: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정부는 매년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실제로 2018~2019년 급격한 인상으로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명목상 올랐다. 하지만 내가 몸으로 느낀 것은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주거비, 교통비, 식비 등 필수 지출은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더 빠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장은 편법으로 대응했다. 근로시간을 쪼개 주휴수당을 피하거나, 단기계약으로 돌려서 4대보험을 회피했다. 비정규직은 매년 재계약 스트레스를 받았고, 임금협상력도 없었다. 제조업 하청, 서비스업, 사무보조, 콜센터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런 문제는 퍼져 있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우리도 조금 오르네”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 생활이 나아진다고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편법을 막고 실질임금을 보장하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상시화 문제를 해결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또 주거비 지원, 교통비 경감, 사회보험 확대 등을 통해 생활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30대 비정규직의 실질임금 체감기는 단순한 개인의 실패담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노동시장을 방치해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공정함과 연대의 가치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